책에서 나를 읽다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용기
『데미안』을 떠올리며, 마흔 후반의 내가 새로운 기록을 시작하는 마음을 돌아본다.
평범한 전화 한 통이 남긴 마음
특별하지 않은 어느 날, 전화 통화를 했다. 나는 누군가와 오랫동안 통화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야기가 길어졌다. 내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평소보다 조금 오래 마음을 나누었다. 어디선가 "이야기 속에는 영성이 있다"는 말을 읽은 기억이 있다. 정확히 어디에서 읽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영성이라는 말의 뜻도 다 안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마음이 가까워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되는 듯하다. 그날의 대화에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받았다. 그리고 내 안에 작지만 분명한 마음이 생겼다. 한번 해보고 싶었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과 조금씩 달라지는 생각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다.
이번에는 ‘나중에’라고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제안을 듣고 바로 시작할 마음을 갖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종종 ‘응, 알았어’라고 답하고는 다음을 기약했다. ‘나중에’라는 말로 대화를 마친 적도 많았다. 그 나중이 언제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과 실제로 해보려는 마음 사이에 거리가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직접 해보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반가웠다. 잘할 수 있다는 확신까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시작하기도 전에 접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을 기록하는 일이라면, 지금의 나에게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상 시작하려 하면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막막함까지 기록에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정리된 생각만 꺼내야 한다고 여기지 않으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첫 문장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데미안』을 떠올리며 나에게 묻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떠올리면, 지금의 나는 방황이라는 말 앞에 잠시 멈춘다. "방황하는 순간에도 당황하지 않기를, 방황하더라도 힘들어하지 않기를" -데미안 / 헤르만 헤세- 마흔 후반에도 마음은 흔들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궁금하다. 나이가 들면 이런 질문에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낯설 때가 있다. 예전에는 방황하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바람을 다시 들여다보니 내게 너무 빈틈없는 모습을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방향을 몰라 망설이는 순간도 있을 텐데 말이다. 이것은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긴 말이 아니라, 책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에게 건네고 싶은 다짐이다. 방황하는 순간에도 나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황하더라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 줄을 써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기록하고 싶은 삶에는 그런 모습도 들어 있다. 무언가를 하고 있고, 여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나.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도 함께 남겨두고 싶다.
설렘과 두려움을 곁에 두고, 묵묵히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기대와 설렘이 있다. 두려움도 함께 있다. 어떤 마음이 더 큰지 자꾸 재다 보면 시작하는 날이 또 늦어질지도 모르겠다. 나는 묵묵함으로 시작하고 싶다. 대단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애쓰기보다, 내게 있었던 일과 그때의 생각을 천천히 적어보려 한다. 오늘 나눈 대화가 마음에 남았다면 그 대화부터, 한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면 그 이유부터 써보고 싶다. 누군가는 마흔 후반의 시작을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 역시 나이를 의식할 때가 있다. 그래도 지금 내게 생긴 이 마음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다.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에게는 소중하다. 강하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나를 약한 사람으로만 여기고 싶지도 않다. 그날의 전화가 끝난 뒤 내게 남은 마음을 이렇게 적는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오늘은 그 마음을 ‘나중에’로 미루지 않으려 한다.